민들레의 상실 손풍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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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였다. 그 간판을 보았을 때부터. 버스 의자에 앉아 무심코 차창 밖을 내다보았을 때, 정류장에서 좀 떨어진 길가 작은 가게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민들레의 상실

평범하고 모나지 않은, 심심한 명조체의 느낌으로 그 간판은 읍내의 먼지 날리는 거리 풍경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 탄성에 가까운 혼잣말로 따라 중얼거렸다. 민들레의 상실. 나는 아무런 의심없이 첫눈에 그렇게 읽었고, 순간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실은 아무 것도 몰랐지만 좀 더 홀로 골똘히 생각해보면, 하루든 이틀이든 내 속에서 그 말들을 굴려보노라면, 민들레가 무엇을 상실했으며 영영 잃었는지 알게 될 거라고 느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마법 같던 '첫눈에 반함'의 순간이 지나고, 나는 깨달았다. 간판은 '민들레 의상실'이었고 좁은 가게 쇼윈도에는 시골 읍내에서 팔릴 듯한, 혹은 읍내에서도 오랫동안 팔리지 못했을 듯한 원피스와 블라우스가 초라한 마네킹에 입혀져 있었다.
버스는 금세 정류장을 떠났고 나는 어이없는 착각에 혼자 조금 웃었지만, 그래도 그날 그 간판은 내겐 '민들레의 상실'이었다. 2년 전 이맘때 일이었으니 그 후로도 한참이나 민들레는 내 안에 황금빛 노란 꽃으로 조용하고 무심히 머물러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미지로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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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읍내 그 자리를 지날 때, 봄이 와 길섶에 민들레가 필 때, 요즘도 나는 그날의 '민들레의 상실'을 떠올린다. 알프레트 되블린의 단편 <민들레꽃의 살해>에 등장하는 검정 양복을 입은 신사 미하엘처럼. 그 신사는 어느 날 넓은 가문비나무 숲길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발길에 닿는 민들레꽃 한 송이를 지팡이로 쳐서 꽃머리를 떨어뜨린다. 머리가 잘린 민들레꽃은 허공으로 날아갔고, 그의 눈엔 남은 줄기에서 터져나온 하얀 즙이 마치 꽃의 피처럼 보였다. 미하엘의 뇌리에서 민들레꽃의 죽음이 떠나지 않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는 미친듯이 숲을 헤매며 떨어져나간 민들레꽃의 머리를 찾으려 하지만 사라진 민들레꽃은 영영 나타나지 않는다.

"난 그 머리를 땅에 묻어주고 싶을 뿐이야. 다른 뜻은 없어. 그러면 그걸로 그만이야......"
그는 그 장소를 찾아내야 했다. 그 꽃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 꽃의 이름이 뭐였던가? 그는 그 꽃의 이름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엘렌? 그 꽃의 이름은 엘렌이었던 것 같다. 아니, 틀림없이 엘렌이었다. 그는 풀밭에 대고 속삭이면서 손으로 그 꽃을 잡으려고 몸을 굽혔다.
   
- 알프레트 되블린 <민들레꽃의 살해>에서

미하엘은 민들레꽃이 어딘가 살아있지 않을까 헛된 희망을 가진다. 그가 내두른 지팡이에 그토록 허무하게 살해됐을 리 없다고. 그는 그 꽃이 자신의 곁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었을까봐 불안했다. 그래서 회사의 회계를 정리하면서 민들레꽃 앞으로 매일 십 마르크씩 주는 장부를 기록했고, 식사할 때면 그의 옆자리에 꽃을 위한 조그만 식기를 놓는 등 초조해한다.

그는 숲속 그쯤에서 죽은 그 민들레꽃의 자매들에게 조의를 표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돌처럼 굳어 있던 그 사나이가 창가에 기대어 울음을 터뜨렸다. 어린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너무나 돌발적으로 울음이 터져 그는 심장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이 모든 아름다움을 엘렌이, 그 증오스러운 꽃이 그에게서 빼앗아갔다. 그 꽃이 입을 열지 못하도록 차라리 이 세상이 한 번의 탄식으로 사라져버리기라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 같은 책

독일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나 많은 고난을 겪은 알프레트 되블린은 소설가이면서 정신과 의사였기도 했다. 오래 전 <민들레꽃의 살해>를 처음 읽은 뒤로, 그가 집요하게 그려낸 강박과 죄책감, 끈질긴 불안은 내겐 샛노란 색깔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미친 것에 가까운 색깔을 묻는다면 나는 노랑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단순한 노랑에서 점점 금빛으로 변해가다 마침내 눈부신 태양빛으로 황금빛 먼지가 될 때... 어쩌면 내 어린시절부터 아지랑이같이 떠돌던 금빛 먼지의 심상은 그렇게 '곱고 아름답게 미친' 것들의 결정(結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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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난해 레이 브래드버리의 <민들레 와인>을 읽었을 때, 마치 상실했던 민들레의 '그 무엇'을 찾아낸 것처럼 행복했다. 1957년에 씌어진 책을 너무 늦게 만나서 안타까웠고, 한편으론 내 인생의 후반기에 만난 것이 기쁘기도 했다. 1928년 일리노이 시골, 한 소년의 시선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들판에 넘치는 유월의 햇살과 그 아래 자라는 꽃들, 나타났다 사라지는 석양,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추억하는 늙은 여인들, 작년에도 올해도 변함없이 민들레를 수확해 와인을 만들어 저장하는 가족의 역사, 모르는 먼 나라에서 흘러들어와 낡은 잡동사니를 묘약처럼 꺼내놓는 방랑자의 숨결로 가득차 있다.

민들레 와인.
이렇게 말하는 순간 곧 여름이 되었다. 와인은 병에 가둔 여름이었다. 할머니가 지하 창고로부터 6월의 여신처럼 올라왔다. 털실로 짠 숄 속에 감추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아래층과 위층의 불행한 방마다 이 향기로운 맑은 술이 들어가면 깨끗한 잔에 부어 모두 쭉 들이킬 것이다. 다른 시간에서 온 약, 햇볕이 쨍쨍 쬐는 나른한 8월 오후의 향기, 얼음 마차가 벽돌 길을 지나가는 희미한 소리, 밀려오는 유성의 불꽃, 잔디 깎는 기계가 움직이면 거기서 솟구치는 잔디, 이 모든 것이 한 잔의 와인 안에 담길 것이다.
오래전에 지나간 세월의 마지막 감촉, 즉 소풍과 따뜻한 비, 밀밭, 새 옥수수, 잡초의 냄새와 교감할 것이다. 할머니마저도 아름다운 황금의 단어들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할 것이다. 꽃들이 압착기 속으로 들어가는 지금 떠오르는 그 단어들, 온 세상이 하얀 겨울이 되어도 되풀이할 것이다. 미소처럼, 갑자기 어둠 속에서 빛나는 햇빛처럼.
민들레 와인. 민들레 와인. 민들레 와인.
   
- 레이 브래드버리 <민들레 와인>에서

인생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반복적으로 살아가는 일에 가깝지만, 그 사이사이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어 그것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힘으로 버티게 하는지도 모른다. 순간은 말그대로 너무나 짧기에, 그 빛나는 찰나를 잡아내 오랫동안 곁에 머물게 하는 이들을 나는 사랑하게 된다. 산그림자 너머 기우는 초승달의 한켠에서 희미한 달빛 한 자락을 손에 쥐고 돌아오는 사람처럼. 레이 브래드버리는 그렇게 쥐고 온 달빛 한 줌을 장장 4백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로 풀어주었다.

"내가 창문을 못 보았다면, 그것 말고도 놓친 게 또 뭐가 있을까? 이 마을에서 내가 본 것들은 어떨까? 멀리 가서도 다 기억이 날까?"
"기억하고 싶은 것은 뭐든 기억이 날 거야."

"그런데 인생도 행복한 결말이야?"
"밤마다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든다는 것뿐이야, 형. 그게 하루에 한 번 있는 행복한 결말이야."
"형은 울고 싶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것뿐이야. 그냥 한참 울고 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그러면 행복한 결말이 와. 그리고 밖으로 나가 다시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면 돼."

- 같은 책

소년 더글러스와 동생 톰을 둘러싸고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물결에 일렁이는 빛처럼 파동을 지니고 펼쳐진다. 시간에 대해, 자연과 계절을 따라 흘러가는 인생에 대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스쳐간 지난날에 대해 끊임없이 말을 건다. 그렇게 세상과 생의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들을 수없이 묘사하며, 그 금빛 아름다움을 다 모아 마침내 원래 말하고 싶었던 죽음을 말하고 깨닫게 한다. 죽음에 관해 소중히 공들여 말하는 이야기가 좋다. 그게 예의니까. 그래서 언젠가 모두에게 찾아올 경건하고 평화로운 마지막 순간을 위해, 살아있는 지금을 기뻐하며 살라고 <민들레 와인>은 속삭인다.

할아버지가 마지막 병을 더글러스에게 넘겼다.
"올 여름 들어 두 번째 수확이다. 6월이 선반 위에 있구나. 자, 이제 8월이 위로 올라간다."
더글러스는 따뜻한 민들레 와인 병을 들었지만 그것을 선반 위에 놓지는 않았다. 살아 있다고 깨달은 날에 대한 생각이 스쳤다. 왜 그날이 다른 날보다 빛나지 않았지? 존 허프가 이 세상 끝에서 떨어져 나가 사라진 날이 있었지. 왜 그날이 다른 날보다 더 어둡지 않았지? 와인은 기억할까?
한번 태어난 것은 모두 그냥 죽지 않는다. 아니, 죽을 수 없다. 그것은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어쩌면 꽃가루 사이에, 벌들이 모아 온 호박빛 꽃가루로 화사한 꿀이 가득찬 벌집 속에......
"8월이 올라가요. 그래요. 하지만 세상살이란 기계도 친구도 다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민들레 몇 송이만 추수하는 거군요."
"쯧쯧, 마치 장례식의 조종 같구나. 그건 욕보다 더 끔찍한 말이야. 하지만 비누로 입을 씻으라고는 하지 않으마. 대신 민들레 와인을 한 모금 마시렴. 쭉 들이켜봐라. 맛이 어떠냐?"
- 같은 책

시간이란 묘한 개념이어서,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시간은 체감이고, 체감의 온도는 저마다 다르니까. 열두 살 소년에게 어느 날 인생은 '모든 것이 사라지고 민들레 몇 송이만 추수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하고, 주어진 시간을 거의 다 써버린 노인에게도 인생은 향기로운 와인 같기도 하다. 시간의 영향을 받지만, 결코 지배되지는 않는 것이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는 생명을 지닌 자로서의 태도이고 싶다.


..... 결국 세상에는 영영 모르고 마는 일들이 있다. 2년 전 봄 읍내 버스 안에서 만난 '민들레의 상실'도 내겐 그렇다. 민들레가 무엇을 상실했는지, 오랫동안 생각해보면 알 것도 같다고 여겼지만 그렇지 않았다. 완전했던 민들레의 시절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나는 본 적도 없고 알 수도 없다. 다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민들레가 상실한 그 무엇을 영원히 모른 채 살아가겠지만 더 이상 골똘히 고개 숙여 생각하지 않으리라. 흘러가는 시간 속에 함께 머물며, 우연처럼 인연처럼 만나는 심상들이 건네는 대답으로 족하리라. 설령 파편일지라도. 그 상실에 관해, 두 편의 민들레 이야기는 허공에 보낸 내 물음에 대한 답장이었으니까. 완연한 봄이 왔다고 느끼는 날에,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은 채 더 이상 골똘하지 않은 무심함으로 걷다가, 문득 피어난 길가의 노란 민들레를 보고 빙그레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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